근대 들어 가장 상징적인 사진들과 역사 이야기
사진 한 장은 천 단어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진은 백만 단어의 가치를 지니기도 하죠. 사진 한 장으로 기근이 끝나고, 전쟁이 끝나기도 합니다. 근대 들어 가장 상징적인 사진들과 역사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만나보세요.
1. ‘지구돋이(Earthrise)’, 윌리엄 앤더스, 1968 / Hasselblad 500 El
아폴로 8호 임무 중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가 1968년 12월 24일 달 궤도에서 찍은 지구와 달의 표면 사진입니다.
2. ‘탱크맨(Tank Man)’, 제프 와이드너, 1989 / Nikon Fe2
중국군이 천안문 광장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다음날인 1989년 6월 5일 천안문 광장을 빠져나가는 탱크들 앞에 서 있던 정체불명의 중국인을 제프 와이드너가 찍었습니다. 탱크가 남자를 피하려고 진로를 바꾸자 남자는 탱크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위치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3. ‘9.11’, 라일 오웨르코, 2001 / Fuji 645zi
영화제작자 겸 사진작가 라일 오웨르코는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던 날 뉴욕에 있었고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할 역사적인 사진을 찍었습니다.
4. ‘불타는 승려’, 말콤 브라운, 1963 / Petri
1963년 6월 11일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박해에 항의하며 소신공양 한 틱꽝득(Thich Quảng Đức) 스님의 모습. 말콤 브라운은 이 사진을 일제 페트리 카메라로 찍었으며, 당시 압도적인 모습에 어떤 노출값을 사용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5. ‘아프간 소녀’, 스티브 맥커리, 1984 / Nikon Fm2
1984년 언론인 스티브 맥커리가 찍은 이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1985년 6월 표지에 실렸습니다. 사진에 찍힌 소녀의 정체는 처음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2년 초 ‘샤르바트 굴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에 그녀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여 파키스탄에 있는 나시르그 난민 캠프에 살고 있었습니다.
6. ‘힌덴부르크 참사’, 샘 쉐어, 1937 / Speed Graphic
힌덴부르크 참사는 1937년 5월 6일 미국 뉴저지 주 레이크허스트 해군항공기지의 계류탑에 정박을 시도하다 화재가 발생해 전소한 사건입니다. 탑승자 97명(승객 36명, 승무원 61명) 중 사망자는 35명(승객 13명, 승무원 22명)이었으며 지상 노동자 한 명도 떨어지는 물체에 맞고 사망하여 총 36명이 사망했습니다.
7. ‘이민자 어머니’, 도로시아 랭, 1936 / Graflex Super D
1936년 3월 6일, 플로렌스 오웬스 톰슨과 그녀의 가족은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왓슨빌로 향해 가던 중 차가 고장 나서 남편과 두 아들은 자동차 수리를 위해 시내로 나가고, 톰슨과 나머지 아이들은 임시거처로 텐트를 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지역 농장에서 완두콩을 채취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 지역이었고, 2,500~3,50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침 재정착 관리국에서 일하는 사진사 도로시아 랭이 근처를 지나던 중 이 사진을 찍게 되어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이 보도되었고 연방 정부에서는 이 지역 이주 노동자들에게 식량 지원을 하게 됩니다.
8. ‘화재 대피 붕괴’, 스탠리 포먼, 1975 / Nikon F
1975년 7월 22일 보스턴 말보로 가에 있는 한 아파트 건물에 화재가 났고, 19세 다이애나 브라이언트와 그녀의 대녀 2세 티아레 존스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중 사다리마저 붕괴되어 약 15m에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9. ‘D-day’, 로버트 카파, 1944 / Contax Ii
전쟁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이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5개 지점 중 하나인 오마하 해변에서 찍은 것입니다. 카파는 포화를 받는 동안 106개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 중 11개를 제외하고는 런던의 라이프 매거진 사진실에서 사고로 파괴됐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찍을 때, 이 사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10. ‘애비 로드 앨범 커버’, 아이언 맥밀란, 1969 / Hasselblad
1966년 11월 9일, 존 레논은 인디카 갤러리에서 오노 요코를 만났고, 이후 그녀의 소개로 아이언 맥밀란을 알게 됩니다. 1969년에 존 레논은 애비 로드 표지 사진을 평소 알고 지내던 아이언 맥밀란에게 맡겼습니다. 비틀즈는 대부분의 음악을 런던 세인트존스우드 애비 로드에 있는 EMI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그들의 마지막 앨범 이름을 그 길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됩니다. 후에 EMI는 스튜디오의 이름을 애비 로드 스튜디오로 바꾸었습니다.
11. ‘전쟁의 테러’, 닉 우트, 1972 / Leica M3
1972년 6월 8일, 전쟁 중인 베트남에 있던 종군기자 닉 우트는 두 대의 전투기가 상공을 지나며 첫 번째로 2발, 두 번째로 4발의 폭탄을 마을에 떨어뜨리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현재는 사용이 금지된 네이팜탄이었습니다. 3000℃의 고열로 반경 300m를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의 위력을 보며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을 쪽에서 뛰어오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여자아이는 옷을 입지 않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옷이 불에 녹아버린 것이었죠. 이 참혹한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공개되자 미국 내에선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이 일어났고 1년 뒤 전쟁은 종료됐습니다.
12.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조 로젠탈, 1945 / Speed Graphic
1945년 2월 23일, 조 로젠탈이 찍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적인 이 사진은 6명의 미 해병대가 수리바치 산꼭대기에서 미국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사진 속의 해병대원 중 마이클 스트랭크 병장, 할론 블록 상병, 프랭클린 소슬리 일병이 며칠 후 전사했으며, 레네 가뇽, 이라 헤이스, 해롤드 슐츠 상병은 살아남았습니다.
13. ‘프라하 침공’, 요세프 쿠델카, 1968 / Exacta Varex
요세프 쿠델카는 1968년 8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틀 전 루마니아에서 집시 사진촬영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프라하를 침공하려는 소련의 군대를 목격하고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 사진은 밀반출되어 선데이 타임즈 매거진에 실렸고,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P.P.라는 익명의 이니셜을 사용했습니다.
14. ‘수병의 키스’,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1945 / Leica Iiia
1945년 8월 14일,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미 해군 수병이 ‘대일전승 기념일’을 맞아 한 간호병과 키스를 나누는 사진을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가 찍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낯선 사이였다고 합니다.
15. ‘존 레논의 마지막 사진’, 폴 고어쉬, 1980 / Minolta Xg-1
1980년 12월 8일, 오노 요코와 함께 녹음 스튜디오에서 돌아오던 존 레논은 자신의 자택 앞에서 사인을 요구하는 마크 채프먼이란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존 레논이 마크 채프먼이 내민 앨범에 사인을 하는 장면을 존 레논의 팬이자 사진작가인 폴 고어쉬가 촬영했습니다. 사인을 마친 존 레논이 집으로 향하자,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의 등에 다섯 발의 총을 발사했고 총에 맞은 존 레논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6. ‘독일 의회에 올린 깃발’, 예브게니 칼데이, 1945 / Leica Iii
1945년 5월 2일 베를린 전투에서 찍은 세계 2차 대전의 상징적인 사진입니다. 베를린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주요 전투로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이 사진은 나치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17. ‘리 하비 오스왈드의 총격’, 로버트 잭슨, 1963 / Nikon S3
1963년 11월 22일, 전 미 해병이었던 마르크스 주의자 리 하비 오스왈드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습니다. 이틀 뒤, 오스왈드는 댈러스 경찰 본부에서 지역 나이트클럽 주인 잭 루비가 발사한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으며 이 장면은 TV 생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습니다.
18. ‘영웅적 게릴라’, 알베르토 코르다, 1960 / Leica M2
‘영웅적 게릴라’는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의 우상적 사진으로 1960년 3월 5일, 쿠바 하바나에서 있었던 라 쿠브르 폭발 사고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서 찍었습니다. 이 사진은 1960년대 말까지 체 게바라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코르다는 사진을 찍는 순간 고통과 분노도 없는 ‘절대불변’의 표정에 끌렸다며 체 게바라의 단호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에 찍혔을 당시 체 게바라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19. ‘도쿄 칼부림’, 야스시 나가오, 1960 / Speed Graphic
1960년 10월 12일, 일본의 정치인 아사누마 이네지로는 다가오는 중의원 선거를 위한 TV 토론회에서 17세 민족주의자 야마구치 오토야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야마구치는 무대에 올라 아사누마 이네지로에게 그대로 달려들어 그의 왼쪽 갈비뼈를 찔렀습니다. 이 장면은 일본의 방송사 NHK를 통해 수백만 명의 시청자에게 방송되었고,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야스시 나가오는 퓰리처상과 올해의 세계언론사진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20. ‘국기의 불명예’, 스탠리 포먼, 1976 / Nikon F
1976년 4월 6일, 보스턴 시청 앞에서 백인 학생 200여 명이 모여 학교 통합 프로그램 반대 시위를 벌였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스탠리 포먼 기자는 인종 차별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테오도르 랜드마크라는 흑인 남성을 백인 학생이 붙잡고 다른 학생은 미국 국기봉으로 폭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유의 상징인 미국 국기가 인종 차별과 증오의 무기로 사용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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